[연결] http://bbs1.kbs.co.kr/ezboard.cgi?db=1Tbook_preview&dbf=228&action=read
이 책을 구입하게 된 이유는
아는 동생이 권해서다.
또한, 정민이란 저자를 알고 있었기에
거부감 없었다.
그는 저작물이 있는,
거기에 연암과 다산에 대해 몰입한다고 스스로 밝힌 사람이다.
하지만,
그 지식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어쩔 수 없었다.
문학의 테두리가 아닌, 인문학이란 지식의 테두리로 들어 온다면 말이다.
다산 선생의 뛰어남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때 다산은 대단할 지 모르나
현대에 온다면 그는 대단한 그 무엇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책은 읽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자기 전 [TV, 책을 말하다] http://www.kbs.co.kr/1tv/sisa/book/ 를 보고서
몇 자 적고 싶었기에 ……
많은 동감과 의견이 있었다.
1. 다산의 저작이 디지털화 되어 있는가! 한글로 번역이 되어 있는가!
원전 텍스트를 읽는 저자의 모습이 보였다.
원전(source)을 읽어낼 수 없는 사람은 우선, 논의가 불가능 할 수 있다.
접근할 수 조차 없는 것이다.
여기서, 책꽂이에 잘 정리해 꽂아둔 종이로 된 자료파일이 보인다.
디지털화 되지 않는 것은 링크되기 힘들다. 그것은 정리한 사람 만이 지닐 뿐이다.
[여유당 전서] http://blog.naver.com/lee_kaang/80026105513 ,
http://blog.naver.com/lee_kaang/80026122837 를 인터넷으로 원문과 해석을 바로 검색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현재 컴퓨터에서 오픈소스 운동이 크게 붐을 일으키는 것 처럼
학자의 테두리에 갇힌 배움 이상이 나올 것임을 확신한다.
벌써 이런 발아가 있기도 하다.
http://blog.naver.com/scgo11/40011113827
2. 패널 중 서강대 화학교수이며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인 이덕환님의 이야기는 이렇다.
다산이 현대에 온다면 볼품없는 지식이다. 엑셀로 하면 다 되는 것이다.
거기에 다산의 지식이 넓기는 하지만, 깊지는 않다는 말을 했다.
거기에 정민 선생은 어이없게도 원전의 모든 글자를 검색해
그 쓰임을 분석하는 다산의 치밀함을 이야기 했다.
깊이 있는 게 아니라 치밀한 그 방법론을 이야기 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다산의 여유당전서의 내용은
현재 고등학생이 공부하는 량으로 친다면
일년 정도면 되지 않을까?
(( 물론, 다산의 방대한 저작과 지식을 폄하하려고 말한 것은 아니다.))
시험 친다고 하면 아이들은 정말 암기와 더불어......
하지만 1번의 경우 때문에 그것을 막고 있는 것은 누구 때문인가!
이것은 저서를 내는 것을 말하는게 아니라 읽고 이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정민 선생은 10년을 베껴쓰도 다 적지 못한다는 말을 한다.
= 여유당 전서 500권의 권은 현재의 책의 분량으로 말하면 부피가 줄어든다는 이야길 했다.
그렇다. 우리는 여유당 전서 500권의 분량이 현재의 책 500권으로 생각한 것이다.
3. 다산 정신을 부정하진 않는다.
다산의 정신을 부정했다면, 이 책을 구입하지도 않았고,
관심을 보일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저서를 곱씹으며 읽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가 분류한 10강 20목 200결의 내용에 침착 되지는 않았다.
현대는 지식양이 모자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다산시선집]을 읽으며 저작에 몰두했다는 그 정신엔 존경을 지니지만,
다산에 대한 텍스트를 읽어낸 사람이기에 그 부분은 진정 인정하지만,
다산의 조사 방법과 대면 토론 이런 것은
현대엔 일상적이란 사실도 인정하고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 읽고 읽는 [조벽교수의 명강의 노하우&노와이]만 읽어보아도 거기에 지닌
깊이는 여유당의 가르치는 방법, 공부하는 방법보다 체계적이고
도움 되는 내용이 많다.
4. 자구 해석에 대한 생각
자구 해석에 대해 무시할 수 없음을 안다.
예를 들어 금방 읽은 영어 문장인
This gesture reveals that they share a brotherly tie.
이것을 보고 그냥 뜻 만 파악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왜 제스처가 단수인지 의문을 가지고, 문장을 분석하고
토론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자적 시선으로 보고 싶은 사람에게
원자적 시선을 강요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원자적 시선은 아직까진 제대로 된 효율적인 해법이 없으니까.
거기에 양자론으로 들어가는 마당에 말이다.
하여튼,
다산의 정신(저서)는
이순신 장군과 마찬가지로 기록되었기에 후세에
토론되어지고 참고가 되는 것이리라!
기록하자!
(비약이 심한 주장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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