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대한민국史2 - 미완의 아리랑에서 따이한의 눈물까지(2009/01/07)
한홍구 지음|한겨례출판|2008.8.14 13쇄 |ISBN 9788984310971 (03900)

2권은 6월19일 1쇄를 발간했고, 13쇄란다. 역시 19쇄의 1권 보다 둘째 권이 덜 읽히는 것이다. 들추어 낸 상처가 너무 아파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약간의 생채기가 더 아픈 법일테니까! 아니면 각박한 현실때문일 수도 있겠다. 
진실은 귀중한 것이지만 진실과 마주선다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점을 배웠습니다-56

각설하고 나는 근대에 대한 무지를 해결하기 위해 읽기를 실천하고 있음을 잊지 말자고 자기 최면중. 한가지 더 추가  - 1권의 머리말 이야기다. 그건 한선생이 역사적 주관임도 잊지 말것. 그렇기에 십분 공감하지만, 주체인 내가 사라지는 경우는 생겨선 안된다. 그런면에서 2권은 상당히 주관적이면서 1권의 내용과 중복도 많이 되었다. 그런 면에서 3,4권을 읽고 싶지 않은데, 네권을 한꺼번에 구입했기에 -_-

[페이지 차례로 정리]
평화를 사랑한 백의민족? - 그 감춰진 역사
베트남전쟁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란 두 단어로 변명하고 싶다. 죄의 유무보다 먹고삶이란 변명. 하지만,  우리가 평화를 사랑한 민족이란 치장은 이제 벗어 던져야 된다. 반성과 사죄를 통한 평화 민족이 되고자 하는 지향점을 일깨워야 할 것이다.
곁가진데 예전부터 했던, 하고있는 생각인데, 역사의 아픈 단면은 어쩌면 기록이 낳은 고통은 아닐까! 정리해 두지 않았다면 한 세대(30년)나 두 세대(60년)가 지나면, 잊고 또 다른 새로움으로 전진할 수 있는 건 아닐까! 무한 반복 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런 몽환적이고도 유아적인 상상에 일침을 가한다 해도 역사의 눈물을 만나면서 나는 정말 줄곧 생각했던 희망(?)였기에 사족을 달아보았다.

박정희, 양지를 향한 끝없는 변신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알았다. 그 아버지의 업보를 생각하면 분명 안될 것이다. 내가 박정희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전태일 때문이다. 그전 엔 사실 전혀 관심 없었다. 오히려 국장을 tv에서 본 기억과 더불어 울기까지 한 기억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돼지처럼 살다가, 전태일을 알게 되면서, 싫더라 박정희가. 거기에 한선생이 밝히는 이야기에서 박정희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정확히 알게 된 것에 만족이다.
비전향 장기수 - 63명은 2000년 9월 수십 년 옥중 생활에서 벗어나 꿈에도 그리던 북으로 돌아갔다.-100
김남주 시인의 옥중 사연을 읽고 나서야 일제보다 더한 만행을 저지른 국가 권력에 대해 답답함을 느낀다. 거기엔 박정희의 미국의 연애(일방적인 짝사랑)사도 정확히 인지 하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 비전향 장기수! 자신의 신념에 반하지 않고 끝까지 굴하지 않았던 그 분들 존경한다. 조정래의 [인간연습]도 떠올랐다.

인권에 대해선 촛불 이후 다가왔다. 수요시위를 통해 일본군'위안부'할머니도 볼 수 있게 되면서 마음 속 가장 큰 답답함이 자유였다. 그렇게 공화국이란 단어도 다시 되새김질 하는 현재지만, TV에 나와 진중권,신해철씨가 이야기 하는 공포감은 또 다른 인권의 이야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박정희에 대해 알게 되고, 비전향 장기수를 통해 일제에 이은 형무소와 연결된 역사적 사실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또한, 베트남전쟁과 연결된 미국-한국의 관계도 알게 되었다.

김일성이 가짜라고?
song of arirang 이란 책을 통해 김산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몰입이 한참 안되더라. 지금도 그렇고... 이어져 김일성을 이야기 하는데, 축지법 등등 영웅 설화가 왜 생겼는지 저자는 착실히 설명하더라. 거기에 등장하는 숙명에 대해선 비판이 없더군! "사실 자체보다 그 사실을 받아아들이는 사람들의 의식을 이해하자"-162는 논조는 많이 불편하다. 김일성이 자신의 집권을 위한 윤색이나 치장이었다란 이야길 먼저 해야 되지 않는가! 그가 역사가라면 말이다. 위와 같은 단순 언급으로 역사가 이전에 역사를 다르게 이해시키는 한 방편(도구)으로 밖에 이용하지 않는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중립성을 믿지 말자고 세뇌했음에도 불편은 여전할 걸 보면 역사를 보는 시각은 언제나 양비론으로 빠지기 쉬움을 알게 된다. 현재는 김정일 건강이 이슈라 그런지 김일성에겐 관심 없다. 그래도 줄긋기와 더불어 읽었다는 것은 밝혀둔다.

군대의 역사, 병역기피의 역사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40여개 국가이지만, 우리나라처럼 가혹하게, 우리나라처럼 철저하게, 우리나라처럼 많은 인원을 처벌하는 나라도 없다.-173
=> 백번 공감한다. 그러나, 분단국가이며, 휴전인 나라 역시 세계 유일하다는 점도 알고 있는가? 병역기피의 역사로 들어가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이야기 할 때 1권에선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유럽의 전통이었고, 조선시대엔 오히려 가지 않는 것이 전통임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그런 맥락에서 감정 몰입을 배제하고 보면, 이승만을 정확히 볼 수 있다. 50만명의 2할 가량이 아사로 죽었다는 비극은 정말...... 왜 이런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가! (역사학자 중에서 이승만을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유영익 교수조차 이 사건을 "9만 명 가량의 군인이 동사, 아사, 병사한 천인공노할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182
국민방위군 사건과 관련해 신성모(당시 국방장관)의 비리 축소,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이기붕. 이런 것이 또 1960년 3.15 부정 선거의 싹이 되었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 하다. 하여튼 국민방위군 사건을 처음 알았다*_*

저자가 언급한 "역사사회학의 세계적인 대가인 찰스 틸리는 국가의 성립 자체를 조직범죄로 보고 국가의 행동양식을 조직범죄와 견주기도 했지만-189" 부분은 동의하지 못한다. 민족이 없고, 국가가 없고, 사해동포주의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는 지금, 미국발 경제위기가 진행되어 인민이 힘들게된 현 상황에서 국가 성립 자체가 회의적인 학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런 식으로 작성해서는 되지 않는다 본다.
그 자신은 국가가 부여한 권력의 자리에서 진실과 화해위원회로 조사까지 했으면서 말이다.

전두환의 역사가 나타난다. 이 사람 아직도 살아 있다. 참회하지 않는 사람이며, 인터넷 댓글에서는 이런 사람을 추앙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정말 답답했다. 지금도 답답할 따름이고. 비전향 장기수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는 그 억압에 굴하지 않았던 그분들의 정신에...... 그런데 그때가 국민학생이었다는 것. 국어,산수,사회,자연 과목 시험치고 1등이네 하면 살았던 아무것도 몰랐던 시대였다는 것. 학교 선생이 지식인이었다면 그런 괴로움이 내 기억 어디에 남아 있을지 모르겠는데, 다만, 예쁜 여자애들 놀이밖에 기억이 안난다는 것. 거기엔 아파서 1년이 쉬었던 사실도 포함되겠지만 말이다.

의문의 죽임을 당한 아들딸을 가슴에 묻은 부모님들이 421일이라는 오랜 기간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해 겨우 얻어낸 것이다-195
=> 그렇다 위에 감정과 내 의견으로 아무리 몰아부치더라도 국가 권력의 남용은 막아야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공화국이지 않는가?

녹화사업이란 전두환의 집권 초기에 강제징집된 학생운동 출신 대학생들을 '특별정훈교육'으로 순화한다는 명목으로 보안사가 마련한 계획이다-187
=> 거기다 프락치 공작으로 이어져 서로를 불신하고 지방간 불화의 원인까지 제공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김신조등 이북 특수부대 31명이 청화대 기습한 것 때문에 1968년 4월1일 250만명의 향토예비군이 생겼단다. 이런 이런 어떻게 예비군이 특수부대에게 이길 수 있나... 답답할 따름이다.

예비군 폐지 문제는 단지 예비군 중대장들의 직업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군, 특히 육군의 운영체계 전반과 관련이 있는 복잡한 문제이다-207
=> 모병제와 더불어 군대 체질개선과 함께 제대로 계획하에 차근차근 진행되길 바란다.

쇠사슬에 묶인 학원, 그리고 지식인
읽기 전에 또 네버엔딩스토리가 생각났다. 그가 자신 길 걸어가는 충분만땅 이해가 되는데, 그 책 팔아줘서 기부(?)하진 말자고 독서가들에게 설득하고 싶을 뿐이다.

현재 사립학교의 학교 운영비를 보면 중고등학교의 경우 재단 부담금의 2%에 불과하고, 사립대학은 6%에 머물고 있다-224
=>이런 걸 제대로 알고 있어야 했다.
설립자가 학교를 세우는 순간 학교는 설립자의 재산이라기보다 공익적인 학교법인의 재산이 된다. 민법 규정에 따르더라도 사학이 이사진은 사학의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일 뿐이다-224

과거시험이 갈수록 서울의 특권층에 유리하게 운영되었던 또 다른 증거는 정규과거보다 임시특설의 과거가 오히려 더 자주 시행되었다는 점이다-239
=> 과거에 대한 연구자료가 이렇게 많았다니!

김남주는 "펜도 없고 종이도 없는 자유대한에서 그 감옥에서 살기보다는" 차라리 고대의 노예로, 중세 농노로, 일제치하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절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98
=> 김남주를 모른다. 알아보려고 한다.

조선일보사는 1969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최초의 민간차관으로 일본의 이토추상사(한일간의 유착의 핵심인물인 세지마가 대표로 있던 회사)로부터 거금 400만달러를 연리 6%에 들여왔다. 사채금리가 50%에 육박하고 은행금리도 25% 내외이던 시절에 이런 조건은 거저나 마찬가지였다.-267
=> 이런 원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묻고 싶다. 현재 조선일보 기자중 분명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1970년 초반까지 신문기자들의 처우는 기가 막힐 정도로 열악했다. 초임기자의 월급은 갑근세 면세점 이하이고, 10년 경력의 부장급이 되어야 겨우 도시근로자 평균소득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중반 대량 해직사태 이후 월급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이 되자 초임기자의 월급이 웬만한 다른 좋은 직장 월급의 두 배 정도로 껑충 뛰었다. 1960-70년대 한국 기자들의 월급은 비정상적으로 낮았지만 1980년대 한국 기자들의 월급은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다.-269
=> 여기에 기득권 유지때문인지 언론고시란 명목하에 기자 권력이 높아만졌다고 본다. http://ohmynews.com 기자가 문전박대 이런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에서 봐야 될 부분이다. 그렇게 시사저널에서 나와 시사IN http://www.sisain.co.kr 이란 주간지가 창간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음에도 미디어법이 국회에서 토론도 하지 않고 상정되는 현실을 보노라면 정말 ... ...

역사를 통한 세상읽기
5.16 당시 박정희가 45살, 김종필이 36살이었는데, 최일남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5.16으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자기들 늙는 줄은 모르고 50살 넘은 사람들을 '밖에 나가 놀라'고 고려장 치르듯 내몰았다"-280
그(김종필)가 몰아내고자 한 기성세대, 예컨대 송요찬, 최영희, 백선엽 등의 나이는 40대 초반에 불과했다-280
갑신정변 당시 김옥균은 34살, 박영효는 24살, 서재필은 19살이었다.
=> 끝 부분은 더욱 주관이 강해 몰입을 방해했다. 다만, 인구학적으로 젊은 나라에서 늙은 나라가 되고 있음을 기억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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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건너는 법(2008/08/)
서경식지음/한승동옮김|한겨레출판|2007.09.20|ISBN 9788984312449 (03810)


서경식씨가 신문에 기고한 글(2005.5-2007.4)을 모아 출판했단다. 서문에 역자의 고마움도 표했더라! 신문 글이라 작은 꼭지로 구성되어 있을 터이고, 쉽게 잊을 것 같아 잡지 않았는데, 오늘 펼치니 빌릴 수 밖에 없었다. 최근 독도 이야기때문 만은 아니다. 그의 감수성을 알기에 그냥 건조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 박노자씨와 더불어 일상의 소중함을 색다름으로 간파하는 작가!

서경식의 어머니는 아들 둘 옥바라지했다. 그러다. 병상에 암으로 시달렸다고 한다. 그런데 광주사건 보도가 그녀에게 큰 충격을 가했다고 했다. 두 아들의 출옥을 보지 못한 그의 어머니.
그 아버지 이야기도 이번에 있더라. 힘들게 힘들게 키워 보낸 두 아들이 조국이란 곳에서 감옥생활을 하게 되고, 거짓 고백으로 동지들에게 잘못될까봐 자살까지 하려고 했던 그 형제史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시대를 건너는 법의 꼭지는 그의 어머니가 살았던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더라.
-하라 다미키<<여름꽃>>의 자살-트루먼이 전황을 뒤집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보도
-미셸 클레이피와 에이알 시반의 <루트181> 영화 이야기
-흐르는 세월의 잔혹성-내용은 먹먹해지는데 어절은 정말 멋진 꾸밈이다.

시사IN 48호와 이어진 내용들이 많았다. 사실로 읽었던 내용을 이렇게 감성으로 다시 읽어면서 정리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끌어당김이라 생각해 본다.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보다 느끼려고 노력하는게 나음을 알게 된다. 역지사지는 불가능 하지만, 디아스포라의 한 사람과 교감할 단어도 알게되고, ...... 그렇다.

참회하고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거기엔 자신의 모어가 일본어란 아이러니도 이야기 해준다. 거기에 안창호 선생의 글과 베니스 개성상인을 읽고 있는 나로선 모든게 이어져 있음에 링크란 단어를 떠올렸다. 하지만, 진전이 되어 이젠 내가 끌어당겼음을 알게 된다.

[기억남는 구절]
사이드는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집' 소리에 응해 "거의 승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실을 설파해가려는 의지"를 관철하며 살았다.-28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 카토 슈이치는 교양의 필요성을 흔히 자동차에 비유한다-36=>탁월한 비유
스페인 궁전화가였던 고야는 프랑스 혁명의 자유주의 사상을 몹시 동경했으나 스페인을 침공한 나폴레옹의 포악한 짓에 분개해 은밀히 <전쟁의 참화>시리즈라는 명작을 남겼다.-44=>진중권의 강의를 통해 알았다.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그리고, 고야를 통해 서경식의 글을 조금이나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자족
8월15일 종전기념일('패전'이라고 해야겠지만 일본에선 계속 '종전'이라는 기만적인 말을 쓰고 있다)-53
일본이라는 나라의 주권자라는 의식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국가나 정부가 저지른 잘못의 책임을 추궁받게 되면 터무니없다는 생각을 하고 곧바로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거부하는 것이다-54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해 즉사한 사람은 10만에 이르지만, 사실 그 가운데 3만 명은 우리 동포인 조선 사람이었다-76 =>우연히 오늘이 8/16일이다. 어제가 8월15일이었고... 그런데 나는 3만 명의 조상이 죽었음을 오늘에야 알았다.
이스라엘 국가가 홀로코스트 이야기를 자기정당화를 위한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파헤쳤다-81
클레이피-사람들이 낙관적일 때 창조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비관적이어야 하고, 사람들이 비관적일 때 낙관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82
"만일 일본이 이스라엘처럼 된다면"이라는 비유가 내게 생생한 리얼리티(현실감)로 다가오는 것을 절감했다-87
한국군 장교들은, 조선전쟁(한국전쟁)을 체험한 한국인은 베트남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고 미군과는 달리 베트남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같은 아시아인이고, 같은 종교를 갖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남북으로 분단돼 동족상잔의 비극과 고통을 모를 리 없는 한국이 왜 군대를 보내 베트남인을 죽이는가. 기것이 베트남 사람들의 심정이다-97
-조피와 같은 감방에 있던 여성 수형자 엘제 게벨은 그가 한 최후의 말을 전한다. "내겐 죽는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행동이 수천 명의 마음을 움직일 겁니다. 반드시 학생들의 반란이 일어날 거예요" 이에 게벨은 대답한다. "오, 조피야. 너는 아직 모른다. 인간이 얼마나 겁 많은 짐승인지를."-127
-왜 동양의 전통적 회화에서는 항상 원근법도 윤곽도 애매하게 처리하는가, 그 이유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177
-동독 스포츠계가 국위선양을 위해 대대적인 도핑을 자행하고 있었던 건 지금은 역사적 사실이 됐다고 할 수 있다.-201=> 베이징 올림픽 폐막 이틀전에 이런 글을 읽으니 그랬었구나! 그랬구나! 절로 생각된다.
-이스라엘 국내의 리버럴파 논객인 엘다르는 이스라엘 정부의 대응에 대해 "아무리 걸어도 계속 잃기만 하는데도 본전을 건지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베팅한 끝에 몽땅 잃어버리는 갬블러처럼 되지 않을까? 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내(서경식)가 보기에 이스라엘의 모습은 오히려 다른 사람 집에 침입해 저항하는 사람 한 명을 죽여버린 뒤 "이젠 되돌아갈 수 없어, 차라리 가족 모두 죽여버리는 거야"라고 각오를 다진 강도처럼 보인다-205
'모어'와 '모국어'를 구별하고 '모국어의 권리'와 마찬가지로 '모어의 권리'도 옹호 해야 한다-215
에그자일exile망명자
'나눔의 집'에 다녀왔다. 4월에 한국에 온 후 빨리 가봐야지, 생각을 하면서도 좀처럼 결행하지 못했다.
제3 세계라는 말대신 3분의 2 세계
오점 없는 반동으로 구원 받기 보다는 혁명과 더불어 사라지는 것이 낫다-285
그것은 '인간성'이나 '역사의 진보'라는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로 우리를 이끈다-286
한국 사회를 외국인 여성이 이주해 오고 싶은 곳으로 바꿔가야 한다. 바꿔 가야 한다. 도망칠 수 없다는 약점을 간파하고 폭력을 휘든다면 일본군 '위안부' 제대와 다른게 없지 않은가-299
=> 그렇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어야 역사를 통해 뭔가를 배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뒷날개
암흑속으로 추락하는 이 시대에 비상구는 있습니까? 경계인의 눈으로 갈망한 우리시대 2년의 기록
Posted by iarchit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