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평전(2009/01/19)
강대석지음| 한얼미디어 | 2004.2.7 | ISBN 8991087000 (03800)


한홍구 선생의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박노자와 김지하, 문노식과 다르다는 말에 어쩌면 근대사를 인물을 통해 접근해 보는게 나을 수 있다 싶었다. 목적을 가지고 책을 찾아본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다. 그렇게 부피에 버거워하면서 빌렸다.

어쩌면 그렇게 순일(純一)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잡념 속에서 살고 있단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쓰지 않았단다. 북한도 읽었으면 한단다.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아 적어보았다)

김남주의 <<아버지>>란 시는 그 시대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그가 죽어가면서 유언을 남겼다 한다
진갤논 일곱 마지기는 두째놈한테 띠어 주라고
성찬이 한번 보고 죽었으면 싶다고." - <<조국은 하나다>>34-46

1부에서 그의 삶을 이야기한다. 2부에선 그의 작품과 삶을 저자가 분석한다. 1부를 읽고 총론에서 각론이란 느낌을 받았다. 그의 삶은 단순한 사회에 하나의 올곧음이 가능하지 않았을까!하며 설레발 느낌으로 부쳤다. 그런데, 2부를 보니 그의 존재가 피상적이지 않고, 실체로 다가왔다.

나는 먹기 위해 사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니 그것 보다 그런 삶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불쌍했다. 왜 같이 생산하고 나누어 같이 생활하지 못하는지 답답해 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숙명에 거부하진 못했다. 한데 김남주는 투쟁했더라. 자유가 존재해야 하는 민주주의에 왜 자유민주주의를 붙이는가!로 시작되는 저자의 의문에 나는 공감했다. 사유재산제의 폐해는 생각해 볼 주제인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전부 관념이라는 신기루 일뿐임을 나는 안다.

2부가 재미없을 것 같아 1부만으로 반납하려고 했는데, 도리어 2부를 쏜살같이 읽고, 이렇게 마감할 수 있어 행복하다. 김남주의 <오늘은 그날이다3>은 근대史의 요약본 같다. 조국은 하나다란 시집을 장만해 볼까 생각중이다.

[기억에 남는 구절]
광주민중항쟁의 과정은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 잘 기록되어 있다. 5월 18일 '화려한 휴가'라는 작전명령 아래 전두환의 사병처럼 길러진 7공수부대가 광주에 투입되어 상상을 초월한 만행을 저지른다. 이들은 광주시민을 '적'으로 간주하며 잔혹한 살인기술을 발휘하였다-113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은 미국이 쥐고 있으므로 미국군의 동의 없이는 신군부 세력이 광주의 학살극을 연출할 수 없었다.-117 => 미국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먹히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우리입장에서 제대로 알아야 한다. 현재 벌어지고 FTA만 보더라도...... 답답할 따름이다.

학살자의 손에서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미국의 대통령은 전두환을 전폭 지지하고 그를 미국으로 초청했다. 이에 대한 분노의 표시로 1980년 12월 9일에는 광주 미문화원이 불타올랐고, 1982년 3월 18일에는 부산의 미문화원에 불길이 치솟았다.-117

김남주는 1988년 12월 22일에 형집행정지로 전주교도소에서 가석방되었다. 감옥에 들어간지 만 9년 2개월 18일만이었다. "'천길 물속에서 겨우 빠져나온 것 같습니다'는 한마디로 출옥 소감을 밝히는 그는 건강하고 밝은 표정이었으나 구속될 때 검고 숱이 많았던 머리가 이제는 백발이 돼 있었다-125
=> 가자사태가 아니라면 감상적일 부분일 수 있지만, 세상을 제대로 보는 하나의 단초가 되는 건 확실하다.

김남주에게 가장 커다란 충격을 던져준 사건이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된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이었다-139
1993년 11월 15일 그는 병원에서 췌장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141
토일(土日,노동자들이 일하지 않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생각하며 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144 => 지금도 그렇지만 먹고삶(생존)에 빠져서 우리 갈구하는 삶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란 지배계급의 물질적 이익을 실현시켜 주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인식에 이르도록 했다-210
김남주는 감옥에서 나온 후에도 수미일관하게 종교를 비판했다. 눈을 감을 때까지 그는 결코 종교나 신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것은 미국에 굴복하지 않았던 그의 철저성과 함께 그에게 커다란 자긍심을 갖게 해 주었다-231

예컨대 광주민중항쟁을 소재로 한 시나 소설을 씀녀서 자본주의의 모순,노동해방, 미제국주의의 정체와 같은 본질문제를 제쳐놓고 계엄군의 야만성, 시민군의 용감성, 시민들의 단결, 사태의 과정 등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246
엥겔스는 사실주의의 불가결한 요소로서 전형성, 객관성, 진실성을 들고 있는데...-248
자본은 그 본질상 소수에게 집중되기 마련이고 자본가는 보다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과잉생산을 하고 노동자를 착취한다-268
맑스주의의 정의에 의하면 사회주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 만큼 가져가는' 사회이며 공산주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사회이다.-269

김남주는 네루다의 시를 원어로 읽기 위해 감옥에서 스페인어까지 공부했다.-340

파농은 그의 책에서 흑인의 열등의식이란 인종적인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백인의 통치를 통해서 주입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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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대한민국史2 - 미완의 아리랑에서 따이한의 눈물까지(2009/01/07)
한홍구 지음|한겨례출판|2008.8.14 13쇄 |ISBN 9788984310971 (03900)

2권은 6월19일 1쇄를 발간했고, 13쇄란다. 역시 19쇄의 1권 보다 둘째 권이 덜 읽히는 것이다. 들추어 낸 상처가 너무 아파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약간의 생채기가 더 아픈 법일테니까! 아니면 각박한 현실때문일 수도 있겠다. 
진실은 귀중한 것이지만 진실과 마주선다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점을 배웠습니다-56

각설하고 나는 근대에 대한 무지를 해결하기 위해 읽기를 실천하고 있음을 잊지 말자고 자기 최면중. 한가지 더 추가  - 1권의 머리말 이야기다. 그건 한선생이 역사적 주관임도 잊지 말것. 그렇기에 십분 공감하지만, 주체인 내가 사라지는 경우는 생겨선 안된다. 그런면에서 2권은 상당히 주관적이면서 1권의 내용과 중복도 많이 되었다. 그런 면에서 3,4권을 읽고 싶지 않은데, 네권을 한꺼번에 구입했기에 -_-

[페이지 차례로 정리]
평화를 사랑한 백의민족? - 그 감춰진 역사
베트남전쟁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란 두 단어로 변명하고 싶다. 죄의 유무보다 먹고삶이란 변명. 하지만,  우리가 평화를 사랑한 민족이란 치장은 이제 벗어 던져야 된다. 반성과 사죄를 통한 평화 민족이 되고자 하는 지향점을 일깨워야 할 것이다.
곁가진데 예전부터 했던, 하고있는 생각인데, 역사의 아픈 단면은 어쩌면 기록이 낳은 고통은 아닐까! 정리해 두지 않았다면 한 세대(30년)나 두 세대(60년)가 지나면, 잊고 또 다른 새로움으로 전진할 수 있는 건 아닐까! 무한 반복 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런 몽환적이고도 유아적인 상상에 일침을 가한다 해도 역사의 눈물을 만나면서 나는 정말 줄곧 생각했던 희망(?)였기에 사족을 달아보았다.

박정희, 양지를 향한 끝없는 변신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알았다. 그 아버지의 업보를 생각하면 분명 안될 것이다. 내가 박정희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전태일 때문이다. 그전 엔 사실 전혀 관심 없었다. 오히려 국장을 tv에서 본 기억과 더불어 울기까지 한 기억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돼지처럼 살다가, 전태일을 알게 되면서, 싫더라 박정희가. 거기에 한선생이 밝히는 이야기에서 박정희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정확히 알게 된 것에 만족이다.
비전향 장기수 - 63명은 2000년 9월 수십 년 옥중 생활에서 벗어나 꿈에도 그리던 북으로 돌아갔다.-100
김남주 시인의 옥중 사연을 읽고 나서야 일제보다 더한 만행을 저지른 국가 권력에 대해 답답함을 느낀다. 거기엔 박정희의 미국의 연애(일방적인 짝사랑)사도 정확히 인지 하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 비전향 장기수! 자신의 신념에 반하지 않고 끝까지 굴하지 않았던 그 분들 존경한다. 조정래의 [인간연습]도 떠올랐다.

인권에 대해선 촛불 이후 다가왔다. 수요시위를 통해 일본군'위안부'할머니도 볼 수 있게 되면서 마음 속 가장 큰 답답함이 자유였다. 그렇게 공화국이란 단어도 다시 되새김질 하는 현재지만, TV에 나와 진중권,신해철씨가 이야기 하는 공포감은 또 다른 인권의 이야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박정희에 대해 알게 되고, 비전향 장기수를 통해 일제에 이은 형무소와 연결된 역사적 사실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또한, 베트남전쟁과 연결된 미국-한국의 관계도 알게 되었다.

김일성이 가짜라고?
song of arirang 이란 책을 통해 김산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몰입이 한참 안되더라. 지금도 그렇고... 이어져 김일성을 이야기 하는데, 축지법 등등 영웅 설화가 왜 생겼는지 저자는 착실히 설명하더라. 거기에 등장하는 숙명에 대해선 비판이 없더군! "사실 자체보다 그 사실을 받아아들이는 사람들의 의식을 이해하자"-162는 논조는 많이 불편하다. 김일성이 자신의 집권을 위한 윤색이나 치장이었다란 이야길 먼저 해야 되지 않는가! 그가 역사가라면 말이다. 위와 같은 단순 언급으로 역사가 이전에 역사를 다르게 이해시키는 한 방편(도구)으로 밖에 이용하지 않는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중립성을 믿지 말자고 세뇌했음에도 불편은 여전할 걸 보면 역사를 보는 시각은 언제나 양비론으로 빠지기 쉬움을 알게 된다. 현재는 김정일 건강이 이슈라 그런지 김일성에겐 관심 없다. 그래도 줄긋기와 더불어 읽었다는 것은 밝혀둔다.

군대의 역사, 병역기피의 역사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40여개 국가이지만, 우리나라처럼 가혹하게, 우리나라처럼 철저하게, 우리나라처럼 많은 인원을 처벌하는 나라도 없다.-173
=> 백번 공감한다. 그러나, 분단국가이며, 휴전인 나라 역시 세계 유일하다는 점도 알고 있는가? 병역기피의 역사로 들어가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이야기 할 때 1권에선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유럽의 전통이었고, 조선시대엔 오히려 가지 않는 것이 전통임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그런 맥락에서 감정 몰입을 배제하고 보면, 이승만을 정확히 볼 수 있다. 50만명의 2할 가량이 아사로 죽었다는 비극은 정말...... 왜 이런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가! (역사학자 중에서 이승만을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유영익 교수조차 이 사건을 "9만 명 가량의 군인이 동사, 아사, 병사한 천인공노할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182
국민방위군 사건과 관련해 신성모(당시 국방장관)의 비리 축소,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이기붕. 이런 것이 또 1960년 3.15 부정 선거의 싹이 되었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 하다. 하여튼 국민방위군 사건을 처음 알았다*_*

저자가 언급한 "역사사회학의 세계적인 대가인 찰스 틸리는 국가의 성립 자체를 조직범죄로 보고 국가의 행동양식을 조직범죄와 견주기도 했지만-189" 부분은 동의하지 못한다. 민족이 없고, 국가가 없고, 사해동포주의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는 지금, 미국발 경제위기가 진행되어 인민이 힘들게된 현 상황에서 국가 성립 자체가 회의적인 학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런 식으로 작성해서는 되지 않는다 본다.
그 자신은 국가가 부여한 권력의 자리에서 진실과 화해위원회로 조사까지 했으면서 말이다.

전두환의 역사가 나타난다. 이 사람 아직도 살아 있다. 참회하지 않는 사람이며, 인터넷 댓글에서는 이런 사람을 추앙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정말 답답했다. 지금도 답답할 따름이고. 비전향 장기수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는 그 억압에 굴하지 않았던 그분들의 정신에...... 그런데 그때가 국민학생이었다는 것. 국어,산수,사회,자연 과목 시험치고 1등이네 하면 살았던 아무것도 몰랐던 시대였다는 것. 학교 선생이 지식인이었다면 그런 괴로움이 내 기억 어디에 남아 있을지 모르겠는데, 다만, 예쁜 여자애들 놀이밖에 기억이 안난다는 것. 거기엔 아파서 1년이 쉬었던 사실도 포함되겠지만 말이다.

의문의 죽임을 당한 아들딸을 가슴에 묻은 부모님들이 421일이라는 오랜 기간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해 겨우 얻어낸 것이다-195
=> 그렇다 위에 감정과 내 의견으로 아무리 몰아부치더라도 국가 권력의 남용은 막아야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공화국이지 않는가?

녹화사업이란 전두환의 집권 초기에 강제징집된 학생운동 출신 대학생들을 '특별정훈교육'으로 순화한다는 명목으로 보안사가 마련한 계획이다-187
=> 거기다 프락치 공작으로 이어져 서로를 불신하고 지방간 불화의 원인까지 제공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김신조등 이북 특수부대 31명이 청화대 기습한 것 때문에 1968년 4월1일 250만명의 향토예비군이 생겼단다. 이런 이런 어떻게 예비군이 특수부대에게 이길 수 있나... 답답할 따름이다.

예비군 폐지 문제는 단지 예비군 중대장들의 직업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군, 특히 육군의 운영체계 전반과 관련이 있는 복잡한 문제이다-207
=> 모병제와 더불어 군대 체질개선과 함께 제대로 계획하에 차근차근 진행되길 바란다.

쇠사슬에 묶인 학원, 그리고 지식인
읽기 전에 또 네버엔딩스토리가 생각났다. 그가 자신 길 걸어가는 충분만땅 이해가 되는데, 그 책 팔아줘서 기부(?)하진 말자고 독서가들에게 설득하고 싶을 뿐이다.

현재 사립학교의 학교 운영비를 보면 중고등학교의 경우 재단 부담금의 2%에 불과하고, 사립대학은 6%에 머물고 있다-224
=>이런 걸 제대로 알고 있어야 했다.
설립자가 학교를 세우는 순간 학교는 설립자의 재산이라기보다 공익적인 학교법인의 재산이 된다. 민법 규정에 따르더라도 사학이 이사진은 사학의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일 뿐이다-224

과거시험이 갈수록 서울의 특권층에 유리하게 운영되었던 또 다른 증거는 정규과거보다 임시특설의 과거가 오히려 더 자주 시행되었다는 점이다-239
=> 과거에 대한 연구자료가 이렇게 많았다니!

김남주는 "펜도 없고 종이도 없는 자유대한에서 그 감옥에서 살기보다는" 차라리 고대의 노예로, 중세 농노로, 일제치하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절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98
=> 김남주를 모른다. 알아보려고 한다.

조선일보사는 1969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최초의 민간차관으로 일본의 이토추상사(한일간의 유착의 핵심인물인 세지마가 대표로 있던 회사)로부터 거금 400만달러를 연리 6%에 들여왔다. 사채금리가 50%에 육박하고 은행금리도 25% 내외이던 시절에 이런 조건은 거저나 마찬가지였다.-267
=> 이런 원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묻고 싶다. 현재 조선일보 기자중 분명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1970년 초반까지 신문기자들의 처우는 기가 막힐 정도로 열악했다. 초임기자의 월급은 갑근세 면세점 이하이고, 10년 경력의 부장급이 되어야 겨우 도시근로자 평균소득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중반 대량 해직사태 이후 월급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이 되자 초임기자의 월급이 웬만한 다른 좋은 직장 월급의 두 배 정도로 껑충 뛰었다. 1960-70년대 한국 기자들의 월급은 비정상적으로 낮았지만 1980년대 한국 기자들의 월급은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다.-269
=> 여기에 기득권 유지때문인지 언론고시란 명목하에 기자 권력이 높아만졌다고 본다. http://ohmynews.com 기자가 문전박대 이런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에서 봐야 될 부분이다. 그렇게 시사저널에서 나와 시사IN http://www.sisain.co.kr 이란 주간지가 창간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음에도 미디어법이 국회에서 토론도 하지 않고 상정되는 현실을 보노라면 정말 ... ...

역사를 통한 세상읽기
5.16 당시 박정희가 45살, 김종필이 36살이었는데, 최일남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5.16으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자기들 늙는 줄은 모르고 50살 넘은 사람들을 '밖에 나가 놀라'고 고려장 치르듯 내몰았다"-280
그(김종필)가 몰아내고자 한 기성세대, 예컨대 송요찬, 최영희, 백선엽 등의 나이는 40대 초반에 불과했다-280
갑신정변 당시 김옥균은 34살, 박영효는 24살, 서재필은 19살이었다.
=> 끝 부분은 더욱 주관이 강해 몰입을 방해했다. 다만, 인구학적으로 젊은 나라에서 늙은 나라가 되고 있음을 기억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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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대한민국史1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2009/01/04)
한홍구 지음|한겨례출판|2008.8.14 19쇄 |ISBN 9788984310859 (03900)


책 뒤 정보를 보니, 2003년 2월 7일 1쇄 발간 했더라! 작년 8월 19쇄를 이제야 읽었다. 

다른 관점(좋은)의 역사서가 많이 팔리는 것 자체에 행복이다 싶다. 그만큼 다양한 사회이고, 그만큼 건강한 사회라는데 희망 가져 본다.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7인 7색]를 통해 한선생을 알았다. 노근리 사건은 뭐 그랬군! 했다. 다만, 베트남에 미안했다. 우리 아버님 역시 다녀오셨기에 그랬던 것 같다. 일찍 돌아가셨고, 동네 이모님들을 통해 비오고 천둥 칠 때 괴로와 했단 이야길 뒤늦게 알게 되어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또, 허동현,박노자씨의[우리역사 최전선] 읽은 후 근대에 대한 무지가 주문하게 했다. 할인폭이 큰 것도 작용했다. [전태일평전]과 조정래 소설과 토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잡게 된 것 까지 합치면 이 책과의 인연은 정리 된 것 같다.

줄긋기를 과도하게 한 책이다. 어제 도서관에서 정자세로 마무리 했다.

[선형적 정리]
모두 자기의 입장을 정당화할 뿐/문제는 관점과 기준이다/이중잣대란 말이 있습니다. 자신에겐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그런 자세를 말하는 것이지요.
=>머리말을 읽고서 E.H. Carr 의 역사란 무엇인가 보다 분량도 적고 쏙쏙 빠져들게 하는 간결함이 좋은.

승리의 짜릿한 감격은 없었다.
국가라 할지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인민(people)은 존재하지 않는다-22 이렇게 people이란 뜻을 온전히 알게 되었습니다.

책속에서 영친왕,순종,고종,덕혜옹주 사진을 보고 놀랐습니다. 작년 낙선재를 다녀오면서 덕혜옹주 이야길 들었던 기억오 이어지고...... 그렇게 입헌 군주제와 공화제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공화제에 대해선 홍세화님읠 글을 통해서 였죠.

공화국은 레스 푸불리카(Res Publika)라는 라틴어에서 온 겁니다. 그리고 이 라틴어가 뜻하는 바는 '공적인 일'입니다. 그 공적인 일을 자유로운 시민들이 같이 해결하려는 것 그게 출발점입니다. 더 정확히 공화국을 표현하자면, "자유로운 시민들이 공익을 목표로 하는 사회로서 법의 권위가 지배하는 국가"입니다. -p94(21세기를 바꾸는 교양에서 ....

극단적인 반공주의 하에서 국내의 사회주의 운동이나 국외의 항일무장투쟁 세력의 존재는 이남의 역사에서 1980년 대까지 철저히 말살되었다-49 이런 글을 옮길 수 있는 자유에 감사. 다만 아직도 국가보안법이란 이상한 틀로 ...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유감스럽게도 다른 민족이라면 차별해도 괜찮다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65 => 그렇다. 그렇다.

태극기, 김두한 이야기도 재미났다.

삼성재벌 이병철의 사카린 밀수가 밝혀지면서 여론은 벌집을 쑤신 듯했다-85
=>몰랐던 이병철의 원죄다. 씨벌.

우리는 무덤 위에 서 있다.
만주국 이야기를 이제야 조금 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들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철저히 은폐할 수 있는 권력을 쥔 채, 숱한 민간인 학살의 무덤위에 살아 남았다.-100

고양 금정굴이나 지리산 외공마을에서는 일부나마 유골을 발굴하다가 쏟아져나오는 유골을 감당할 길이 없어 다시 흙을 덮어 버렸고,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는 지금도 발굴중이다-122
=> 나무아미타불만 나온다.

한국전쟁은 20세기의 그 어떤 전쟁보다도 민간인 희생비율이 높은 '더러운 전쟁'이었다.-123
=> 이 페이지에 있는 죽은 사람의 목을 바라보는 뒤 사람이 꿈에 나올까 두려울 뿐이다.

노령의 진보적인 어른들은 '똑똑한 사람들은 그때 다 죽고, 쭉정이만 남았다'라는 말을 하고, 군사정권 시절 '나서지 마라'는 부모들이 대학생이 된 자식들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이었다-125
=> 그랬던 것이다. 그랬던 것이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왜 뒤로 가는가 앞으로 가야지 했던 나의 시선을 제대로 바로 잡아주었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역사는 정말이지... 정신대할머니의 수요시위가 계속 머릴 가두고 있다.

나를 편들지 않으면 모두가 적이라는 부시의 힘의 논리가 횡행하는 이 시대에 우리의 도덕과 상식은 다시 시험을 받고 있다-140

또 다른 생존방식 '편가르기'
연좌제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보았다. 결론: 없어져야 할 제도.
최덕신 류미경과 그의 아들 최인국의 이야기는 정말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였다.

반미감정 좀 가지면 어때?
이제야 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 시작은 맥아더였고, 어제 캐슬린 스티븐슨의 백범 기념관 참관이었다. 그녀는 미국을 대표할 따름이다. 우리 역시 실리외교를 꼭 하길 바란다. 그리고 미순이, 효순이를 통해 미국 환상에서 빨리 빠져 나왔으면 좋겠다.
또한 조약과 협정의 차이를 알다.

1992년 25.4억달러, 1993년 24.1억달러로 주한미군 주둔비의 78%를 우리가 부담하는 것이다. 이는 일본이 76%, 독일이 33%, 나토 회원국들이 25%를 분담하는 것과 비교할 때 세계 최고다. 필리핀이 미군기지 사용료를 받는 거소가 비교하면, 그리고 쥐꼬리만한 대북지원과 비교하면 '퍼주기'도 이런 '퍼주기'가 없다. 게다가 미국의 무기강매는 '퍼가기' 수준이다.-234
=> 거기에 기지 반환과 더불어 발생하는 환경오염은 정말 미국 놈들... 이번 이스라엘 작태만 봐도...

미국과의 관계를 제대로 처음부터 이야기 들었다. 신미양요라고 하면 안되고 전쟁이라고 해야 된다는 말에 백번 동의.
249페이지 2002년 12월 그 자리에 10만 명이 모였다고 설명한 사진은 처음엔 촛불인줄 알았다...

병영국가 대한민국
군대를 갈 젊은 10대들에게 꼭 읽었으면 추천한다. 제대로 밝혀냈다. 나 역시 군대를 편하게 갔다왔음에도 유승준의 얍삽함에 얼마나 화가 나던지... 하지만, 이제 우리 10대에겐 이런 짐을 지우기 싫다. 꼭 읽었음 좋겠다.

프랑스혁명과 같은 정치.사회적 변화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국민군대가 등장하게 된다. 프랑스가 신분의 차이를 넘어서 국민개병제에 입각한 국민군대를 형성한 성과는 나폴레옹의 유럽 석권으로 나타났다.-263
=>다른 나라 지식층들도 동경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저지른 만행은 또 다른 비극이었다. 그건 전시회를 통해서 알게된 세계사 한 자락이었다.

우리 군은 전쟁을 치르지 않고서도 3년마다 1개 연대 병력을 잃고 있는 셈이다. 걸프전 당시 미국 쪽 사망자가 269명에 불과한 것에 비한다면 이같은 손실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 수 있다-270

우리 헌법 39조 1항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라고 되어 있다. 국방부나 병무청이 병역의무의 정당성을 내세울 때 금과옥조로 여기는 조항이다. 그런데 우리는 39조 1항뿐 아니라 그 뒤에 나오는 39조 2항을 기억해야 한다.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사문화된 이 조항을 우리는 되살려야 한다. 그것이 현재 상류층 자제의 병역비리로 인해 야기된 병역의무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하는 유일한 길이다-283
=>여기엔 또 하나 북한이 존재한다는 것과 맞물려 있는 것도 현실이긴 하다.
하지만 27배나 차이난다는 파워에서 우리는 이제 조금은 자유로와질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상류층의 병역비리를 보노라면 더욱 그렇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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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바꾸는 교양 : 7인 7색 (2005/08/07)
홍세화, 박노자 외 등저 | 한겨레신문사 | 2004년 06월 | ISBN : 8984311243

박노자/한홍구/홍세화/하종강/정문태/오지혜/다우드쿠탑/

EBS에서 정문태씨의 강연을 보았다. 그러다 우연히 사이트 책소개로 과감히 구입했다. 의식화 이런 개념이 아니라 좋아하는 홍세화씨가 있어서 였다. 재미나게 그리고 다르게 보기 관점에서 잘읽은 것 같다. 홍세화씨의 필체를 아주 좋아해 흉내내어 보기도 했던 것 같다.

오세훈 변호사의 강연도 들어보았고, [사다리 걷어차기]란 좋은 책을 읽어 그런지 시각의 다각화란 말이 떠올려진다. 또한, 다양한 종이 존재해야 그 종의 멸종을 막을 수 있듯이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수렴을 통해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건전한 사회로 가는 밑거름이지 않을까 싶다.

단, 판단은 각 독자의 몫으로 두는게 현명한 책이기도 하다.

박노자 - 커피가 아니라 프리마인 것은 인정하자.그는 이방인이다.

우리가 근대를 전근대보다 우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p19
=> 동의한표 (예전 부터 자리잡고 있는 생각이었다) -이것과 어울어져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란 철학용어가 내 의식에 존재한다.

한국 군대의 기합은 일본을 거쳐서 들어온 19세기 말 20세기 초 독일의 군대 훈육 방식이거던요.-p20
=> 불멸의 이순신이 생각난다. 조선 초의 우리 군은 어떠했을까?

우리 나라 접대문화 역시 친일 한상룡 같은 매판자본가가 일본 관료를 접대하다보니 생긴 것이다
=> 우리 나라 정말 술문화가 이랬을까? 왜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을까? 조선 시대에도 접대문화가 이랬을까? 천천히 읽고 있다. 아주 재미있어서 말이다.

한홍구
노근리사건 6.25 전쟁 당시 미군이 피란민들을 살해한 사건. 1950년 7월 26일, 미국은 충청북도 영동군 주곡리.임계리 주민을 피란시켜주겠다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 쪽으로 이동시킨 뒤 총격을 퍼부어 100-200여 명이 숨졌다.-p56
=>2001인가 조사단으로 올때,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나라 사람(미국 국적)이 같이 왔다는 화면을 본 적있다. 동전의 양면이다. 물론 양면이 존재한다는 것에만 빠져들면 안될 것이다.어디가 앞인지 뒤인지도 알아야겠고, 금액도 알아야 되고 ...

누구를 위한 국익인가?-p65

베트남전 때 사실 우리가 많이 벌긴 벌었습니다. 대략 10억 달러를 넘었을 겁니다.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그럼 다른 나라들은 얼마나 '특수'를 봤을까요? 군대를 전혀 보내지 않은 일본은 100억 달러가 넘습니다. 대만은 얼마쯤 이익을 봤습니까? 한 5-6억 달러쯤인데 파병 규모는 고작 20명이었습니다. 그 20명이 뭐였냐면, 공항에서 깃발 들고 있을 군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32만 명을 보내 만 명이 부상당하고 5천 명이 죽었고 고엽제 피해자가 나오니까 그 수는 더 늘어날겁니다.-p66
=> 현실을 어떻게 봐야할 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이었으니까*_*

우리나라 국방 예산이 1년에 17-18조나 됩니다.-p72
=>사병 급여가 차지하는 비율이 0.84랍니다.

신세대를 가리켜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참는다"고 하더군요. 반면 저와 같은 연배는 불행한 세대입니다. '독수리 오형제' 컴플렉스를 가진 세대지요. 한국사회 민주화나 조국통일을 고민하고,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감옥에 가고 두들겨 맞으면서도 고작 듣는 얘기는 '배후가 누구냐'는 것이었습니다. -p73

확실한 것은 여러분들의 작은 기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고, 더 확실한 것은 여러분들이 기여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죽었다 깨나도 안 바뀐다는 것입니다. -p76
=> 전쟁기자인 정문태씨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홍세화 - 이사람 필체를 좋아하고 善하다고 생각하며... 한겨레를 받아 볼까는 생각도 한다.
진보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한면만으로 판단하면 안된다. 그렇지만, 신념대로 움직이는 사람을 보면 멋지다고 여긴다. 여기서 고집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바대로 행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간단하겠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화-p87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p83

진보의 길은 쉽지 않습니다. 쉬운 길이라면 누구나 갔을것이고 진보라는 말 자체에 의미가 없었을 겁니다.-p91

공화국은 레스 푸불리카(Res Publika)라는 라틴어에서 온 겁니다. 그리고 이 라틴어가 뜻하는 바는 '공적인 일'입니다. 그 공적인 일을 자유로운 시민들이 같이 해결하려는 것 그게 출발점입니다. 더 정확히 공화국을 표현하자면, "자유로운 시민들이 공익을 목표로 하는 사회로서 법의 권위가 지배하는 국가"입니다. -p94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이라는 허상-p96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는 광고에 의하면 사람이 부동산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부동산에 의해 사람이 평가됩니다.-p107
=> 웃기다. 역시 다른 단면이다.

하종강 - 나는 노동자다. 그래서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법시험에 노동법이 출제된 적이 없습니다.-p138

헌법 제33조 1항: 근로자는 근로 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결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p142

고통스럽고 힘들 때에는 역사를 긴 호흡으로 보세요. -p170
=> 개인의 문제에서도 이렇게 생각해보자!
미국식이 가장 이상적이냐.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p171

정문태 - 이사람의 대담을 EBS에서 보고 구입한 책이기에 그런지 전쟁이란 단 두글자에 깊은 사색할 시간을 준 것 만으로도 족함이다.

전쟁은 정말 있어선 안된다고 본다. 한편으로 무의식에선 이제 이런 시대에 무슨 전쟁이 있을라고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태극기 휘날리며 를 보면서 군생활에서 상상만 했던 백병전에 대해서도 또다르게 체감하게 되고 북한의 존재감을 알게되면서 전쟁이란 단어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도 가지게 된다.
그의 말은 전쟁은 장난이 아니며, 그 사실 속에서 ...

만약 사람이 계속 공포심을 느낀다면 전쟁 취재는 불가능하겠지요. 다행히 망각이라는 게 있어서 공포 자체도 잊혀집니다. 이건 어떤 순환하는 구조입니다. -p192

전쟁기자는 어떤 정파나 인종이나 국가나 종교에 속해서도 안 되며, 또 전선에 오르는 순간부터는 자기가 속한 사회는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을 파견한 언론사까지도 모두 다 '배반'해야 한다고 믿어왔습니다.-p193

전쟁 취재에 있어서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정부와 군대의 '전시 언론통제'고, 둘째는 언론사들의 상업주의 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바로 전쟁기자 자신의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p196

군대가 모든 전쟁 취재와 보도를 지원하던 가운데 <타임스>가 처음으로 자사 비용을 들여 러셀을 전쟁터에 파견했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합니다. -p198

에이브러 링컨은 전쟁 보도에 불만을 품고 <시카고 타임스>를 폐간시켜 악명을 떨쳤습니다. -p199
=> 이런 이야길 통해서 이순신의 위대성을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리고 정확히 전체적인 조감이 필요하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영국군은 중립적인 보도를 하는 자국 전쟁기자들을 독일 스파이와 같이 취급해서 사살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p200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워코스(warcos : war correspondent)라는 유명한 전쟁기자가 등장합니다. -p201
=> 전쟁에서 심리전과 선동의 중요성을 확인하것이겠지!

한국전쟁(그 시절) 전쟁기자들이 공산주의 박멸을 외치는 미국 정부의 나팔수 노릇을 했다는 치명적인 결함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p202

1962-1975년 AP통신 특파원으로 베트남전을 취재하고 있는 피터 아넷. 아넷은 베트공 병사들이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려 투쟁하는 민족주의자들이며 남 베트남 정부가 부패했다는 내용의 보도로 미국 정부의 분노를 샀다.-p205

베트남전을 전후해 정부와 힘을 겨룰만큼 거대해지면서,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사 비용을 들여 전선에 기자를 파견할 수 있었다는 게 가장 중요한 배경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p206

가장 악질적인 영화는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 1984) 같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나팔수 노릇을 한 대표적인 영화지요. 영화 킬링필드는 미군이 죽인 양민60만명에서 80만 명을 파묻어버렸습니다. 모든 캄보디아 양민학살은 크메르루주가 저질렀다는 식인데, 이건 사리과 다릅니다. 아무리 영화의 허구성을 인정하다 치더라도 역사를 왜곡해선 안된다고 봅니다. -p223
=>이영화를 단체 관람해서 봤는데 *_* 전쟁이 잔혹성, 파괴성에 대해서만 인지한 것은 아니 것 같다. 위 글을 읽고 미국이 싫어지니까 사실을 정확히 알자.



오지혜 - 얼굴 이쁜 배우는 아니지만, 얼굴속에서 그리 쉽게 산 인생은 아닐 것이란 예감에 사로잡힌다. 알고보니 오현경씨와 윤소정씨를 부모로 둔 사람이다. 와키키 브라더스 이후에 tv에도 얼굴이 보이고 해서 낯익어 좋다.

연예인은 생각이 없다는 편견을 버려라는 이야기.
연예인의 사회적 영향과 역할

신해철, 신성우,윤도현 밴드 등이 참여한 '대중음악 연대모임'에서는 파병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지요. 이러한 일들은 사회에 무관심하던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전쟁 반대와 파병 철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합니다. -p240

propaganda - 선전, 선전운동 -p246

저는 광장문화를 만들어낸 20대를 존경합니다. -p247

한겨레21에 글을 쓰는가 보다. 촛불시위때는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불렀단다. 단지 사랑을 민주로 바꾸어서. 집회를 금지시키니까, 문화 행사로 치루기 위해서...
음 몇년이 지나고 나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이야기가 어떤 시각으로 읽혀질까?

다우드쿠탑 - 기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관한 이야기를 해줬다. 무슬림이 아닌 기독교인으로서. 또다른 시각을 알게된다. 왜곡되어 있던 시각도 많이 수정되고 있어서 그런지, 쉽게 읽혀졌다. 중동 7일 전쟁때의 이야길 물어보는 청자가 있었는데, 사실과 약간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아라파트가 죽은 지금은 또 어떤 이야기가 시작될까?

시온주의를 가진 이스라엘 사람들의 무서움(?)은 이상세 만화를 통해서 받아드린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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